2013년 7월 14일 일요일

숲속의 게릴라로 변신한 우리딸


연일 푹푹찌는 무더위. 전기도 물도 없다.  달겨드는 모기떼와 전쟁하며 하루 8시간의 육체노동. 저녁은  직접 모닥불을 피워 여럿이 팬하나에 해먹는다. 끈적대는 몸으로 잠자리에 든다.  열흘넘게 샤워 한번 못했다. 심지어 TP(화장지)사용도 금지돼 뒷처리는 나뭇잎으로 한다. 


무슨 특수부대 지옥훈련소이야기가 아닙니다.  인질수용소 이야기도 아닙니다. 바람 불면 날아갈까 비오면 꺼질까 애지중지 키워온 우리 대학생 딸네미의 여름 캠프이야기입니다.

자연보존봉사단의  캠프리더로 떠난 후 걸려온 딸의 전화를 받고 우리 부부는 실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처음엔 얘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지요.


설마....거기가 미국 맞아? 혹시 남미나 아프리카 어느나라로 간거 아냐?



그런데 직접 방문해 보니.....사실이었습니다. 어제, 거진 한달여 만에 트윈시티에서 딸을 만났습니다. 같이 점심을 먹고 북상, 2시간 정도 달려 힝클리란 곳으로 빠졌습니다.  무슨 카지노를 지나 한참을 가니 캠프가 있다는 스테이트파크의 사인이 보였습니다.




이제부턴 흰꼬리사슴과 새끼곰이 노니는 숲 길입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 그래블로드를 얼마나 달렸을까, 여기저기 수풀사이로 캐빈들이 나타났습니다. 문득 헨리데이빗소로우의 오두막이 연상되더군요.


중앙의 통나무집 앞에 Conservation Corps란  그래픽이 붙은 밴과 트럭들이 서 있었습니다. 여기가 베이스캠프랍니다.


이때 한 무리의 건장한 청년들이 콩가루같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어정쩡하게 서 있는 우리차를 향해 다가 왔습니다.  순간, 여기가 만약 남아메리카의 어느 정글이고 이 친구들이 만약 총을 메고 있었다면....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이들이 활짝웃는 얼굴로 악수를 청하지만 않았더라면이건 영락없이 몸값을 노리고 길 잃은 관광객을 납치하려는 남아메리카 어느나라 반정부 게릴라에 둘러 싸이는 형국입니다.












다들 햇볕에 얼굴이 벌겋게 익은 채  땀냄새가 풀풀나는 이들은 미전역의 많은 지원자 중 엄선된 학생들입니다.

여름 8주간 주어진 이들의 임무는 청소년 캠프리더(Youth Corps crew leader).  2인1조가 되어 한 그룹당  6명의 청소년들(crews, 15세~18세)을 이끌고 다양한 자연보존 활동을 한다는 겁니다. 한동안 카누를 타고 강을 따라 다니며 야영을 하기도 했다네요.

딸애가 보여준 작업 업리스트를 보니 이건 뭐 완전 노가다....심지어  벌목공이나 할 거 같은 일들도 보입니다.

각종 데이타/ 관찰, 조사활동
Water quality sampling & monitoring, Wildlife surveys.
경사지, 하천, 둔덕 등 개간정비
Slope stabilization,  Shoreline & stream bank restoration.
식목, 수목관리, 씨앗수집, 천수(?)가든 조성 등등
Planting, Nursery activities, Seed collection, Rain garden installation.
도크,교량, 계단...건축/목공관련작업, 길 만들기, 관리
Docks and bridges, Boardwalks and steps, Natural resource facilities,Trail construction and maintenance.

학기내내 공부만 하던 대학생들이 무슨 유격대 대장처럼 청소년 그룹을 이끌고 숲속을 다니며 이런 일을 한다는게 아직도 실감이 안갑니다.

한편 비영리단체지만 워낙 힘든 육체활동이 포함된지라 참여자들에게는 보수가 지급됩니다.  기간 중 일당과 모든 숙식경비제공 외에 8주간의 봉사활동 댓가로 지급되는 장학금은 한국 돈으로 약 400만원 정도.  딸은 오는 9월 부터 한 세메스터를 정부장학금을 받아 아프리카 세네갈대학에서 공부할 예정입니다. 이번 여름 번 엑스트라 인컴은 오가는 길에 친구와 함께 모로코와 프랑스에 스톱오버해 여행경비로 쓸 생각이랍니다.

생각하면,
산모나 아기에 대한 웰페어시스템이 좋은 유럽에서 태어난 딸 애. 그 바람에 미국에서 생산한 아들과 달리 날때부터 돈벌며 나온 아이. 학비가 엄청난 사립대학을 다니지만 커서도 이렇게 다양한 장학금과 돈벌이로 부모 짐을 덜어주니 얼마나 대견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딸과 친구 레이첼이 거하는 캐빈 안팎을 둘러 보는 중.  이 무더위에 이런데서 샤워도 못하고 어떻게 잔다는 건지 너무 불쌍해서 처음엔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냉방기는 커녕 선풍기도 없는 한증막에 모기는 웽웽거리고...문만 열고 나오면 버그스프레이를 잔뜩 뿌렸는데도 모기떼가 단체회식 좀 하자며 달려 들더군요.

침대 위에 딸아이의 백팩- 기능성 좋은 신형을 사주었건만 마다하고 궂이 엄마,아빠가 처음 유럽백팩여행시 남대문시장에서 샀던 사반세기전의 저 구닥다리 배낭을 가져간 딸.



장하고 용맹한 딸에게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먹고 돌아 오는 길.
역시 감명을 받은 듯 한동안 말없이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이 더위에 저런 환경에서 아직도 한달을 더 지내야 
하는데 이해가 안가요. 저렇게 신이 나 있다는게.  

- 글쎄말야. 무슨 극기훈련들 하는거 같더라구.   

- 혹시 사실은 많이 힘든데 걱정할까봐 우리 앞에서만 
명랑한척 한 건 아닐까요?  

-  그건 아닌거 같애. 다들 정말로 밝고 행복해 보이자나.  
젊을땐 저런 고생도 재미있는 법이지.     

 -역시 청춘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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