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6일 토요일

뉴욕변호사되어 돌아온 그때 그 소녀

우리가 정든 남가주를 떠나 이곳 미드웨스트지방에 정착해 사는 동안 늘 가깝게 지낸,  존경하는 분 중에 미국에 사십여년을 거주하신 P선생님 부부가 계십니다.  지난주 이분들 따님의 결혼피로연이 열렸습니다.

백인인 신랑과 P선생님의 큰딸인 신부는 둘다 맨하튼의 뱅크럽시(파산법)변호사입니다.  달포전에 이미 친가가 있는 그곳 뉴욕에서 공식 결혼식을 했고  친정이 있는 우리동네에서 주변 지인들에게 인사차 골프장 크럽하우스를 빌려 다시 결혼인사 겸 디너모임을 가진 겁니다.

양가부모와 가운데 신랑신부. 
혹시나 염려되는 프라이버시 문제상 잘 안나온 원경사진만 한장 올립니다.

그러니까 1997년 어느 여름, 대륙횡단 여행 중 이곳을 지나다가 우연한 인연으로 첫밤을 P선생님댁에 묵었습니다. 당시 하이스쿨 주니어였던 따님은 우리에게 제 방을 내주고 아랫층에서 잤던, 그래서 미안하던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그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 어린소녀가 대학을 마치더군요. 이어 원어민교사로 서울, 북경 다시 미국 여러도시를 전전하며 세상경험을 쌓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게 불과 얼마전 같습니다.  그 무렵 P선생님 내외분이 걱정을 많이 하시던 일도 기억이 새롭네요.

그리고 얼마후 다시 시애틀에서 LSAT 공부를 한다는 소문이 들리는가 싶더니 이어 보란듯이 동부의 명문법대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모두가 안도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새 뉴욕에서 변호사가 되었답니다. 잠시 취직걱정을 하는가 하더니 맨하튼의 유수한 로펌에 들어 갔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제 우리딸 언제나 시집가 손주보나 부모님 애를 좀 태우나 싶더니 영화배우 뺨치는 잘생긴 애인이 생겼다는 풍문....그리고 마침내 오늘 백마탄 왕자님과 함께 혼례를 올리러 금의환향한겁니다.

이젠 서른두살의 원숙한 여인이되었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는 아직도 처음 보았을때의 그 어린 주니어 여고생으로 자리하고 있는 신부입니다. 정말 아이들 자라는데서 세월의 빠름을 느낀다는 옛어른들 말씀을 다시 실감하는 오늘입니다.

사실은 그간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미국의 결혼문화에 대한 비교를 해보려고 시작한 글입니다. 그런데 신부이야기로 서두가 너무 길어져 오늘은 일단 여기서 줄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은 결혼식의 준비절차와 과정,세레모니가 부모등 가족 그리고 하객위주인 경향이 있습니다. 또 규모가 큽니다. 그에 비해 미국은 준비도 진행도 그날의 주인공도 철저하게 당사자 위주로 즉 브라이드와 브라이달그룸에 집중 포커스가 맞춰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객도 보통 신랑신부의 잘아는 측근, 친구들만 초대되므로 규모가 작더군요. 그외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기회에....


댓글 1개:

  1. 블로그 관리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