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3일 월요일

가슴앓이를 하는 딸을 보며

 
지난달, 요즘 우리 놀이터 중 한군데인 세인트폴 코모파크. 
도터의 보이후렌드 M과 함께 고기를 구어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중 .  

M은 훌륭한 청년입니다. 

딸과 같은 대학을 올 봄,  졸업 후 아직 변변한 직장을 못잡고 있지만 심성이 바르고 성실합니다. 
지리학전공, 비교종교학 부전공. 북동부 메인주의 명문가 출신. 
보기에도 잘 어울리는 한쌍입니다.  

딸이 독신으로 살거나 서른은 너머 결혼하기를 은근히 바라는 로변철씨도 보이프렌드로서 M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입니다. 
아마도 자기 견변철학이야기에 관심 갖고 잘 경청해 주어서 그런지 모르나.

M의 부모님들은 동부 메인주 바닷가에 뒷마당 널널한 전원주택에 사십니다. 아이들과 무관하게 언제든 와서 자기집 야드에 며칠이고 캠핑을 하라고 초대하십니다. M의 모친은 삭발만 안했지 매우 독실한 부디스트 수행자로 동양사상과 특히 이번에 만나면 삼사라-The eternal cycle of birth, suffering, death, and rebirth-에 대해 로변철씨와 밤샘토론을 하기로 언약한 상태입니다. 어쩌면 가을,캐나다 퀴벡가는 길에 들려 한달정도 그 집 마당에 베이스캠프를 칠까도 생각 중이지요. 아름다운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곳이라 더욱. 

그런데 아, 마음 아프네요. 

M은 다음 주면 학업과 구직을 위해 서부의 시애틀로 갑니다. 
우리 도터는 곧 훌브라이트 장학재단 지원으로 해외-아프리카/유럽으로 떠납니다. 
둘다 공부를 마칠때까지 최소 3년 이상은 생이별, 떨어져 지내야 하는 상황. 

고민 끝에 둘은 일단 헤어짐, 이후 원거리 친구관계 유지, 그리고 3년 후는 그때가서 결정으로 잠정 합의를 본 듯 합니다. 
막연하고 무책임하게 서로를 속박하는 언약보다는 현실적이고 실리적 결정을 한 겁니다. 

참 요즘 젊은세대들은 이렇게 차갑도록 이성적인가 약간 섬뜩하기도 합니다. 

저도 낭낭청춘 18세에 로변철씨를 만났습니다. 지금 도터보다 서너살 어릴땝니다. 
그 당시 우리라면 과연 그렇게까지 냉정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실리나 이성보다는 
다분히 감성적인 결정을 했을 듯 합니다. 
아니, 사실 그렇게 했지요.   

딸에게 우리는 잠정적 결별 결정에 대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조언은 주되 '마지막 결정은 너희가 알아서...'가 
언제나 법적성인이 된 이후 아이들 문제에 대한 우리의 공식 입장입니다. 

"두사람의 사랑이 이어진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헤어진다면 아픈 그 만큼 
또 서로가 무언가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할게 무어냐..."
는게 아빠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별의 슬픔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수월치 만은 않네요.  
어차피 오는 주말에 같이 캠핑을 가기로 했는데 조금 전 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나 너무 힘들어. 오늘 저녁 엄마 아빠랑 시간 좀 보내고 싶어..."  

생전 자기 약한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 아이인데...

하필이면  바쁜 할 일이 많은 날입니다. 하지만 내 새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딨을까요. 
딸의 퇴근시간은 3시30분. 
만사 제쳐 놓고 잠시후 세인트폴 다운타운으로 달려 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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