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4일 금요일

서울-부산 4배 거리를 하루에 운전한 날

오늘 하루 집까지 거의 1천 마일(1천6백키로)을 단숨에 달려야 합니다.

 원래는 귀가길을 원래 2-3일 잡고 중간에 관광/ 야영도 하면서 아들과도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던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친구들과 파티, 캠핑여행 등이 연달아 있다는 이유로 논스탑으로 집에 가잔 겁니다. 하긴 우리 생각이지 저 나이에 친구들과 저러구(아래 사진)어울리는게 재미있지 누가 부모와 캠핑을 따라 다니고 싶겠습니까.


                       아들의 훼이스북에서 업어온 사진. 

내심 섭섭하지만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닙니다. 특히 지난 1년을 교환학생으로 노르웨이와 프랑스에서 온 여학생 둘과 친하게 지낸 아들- 마침 그 애들이 떠나는 훼어웰파티 등이 다음날부터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아들은 그 중 한아이와 좀  특별한 감정을 발전시켜가고 있는 상태이기에 떠나기 전에 좀 더 많은 시간을 그 애와 보내고 싶은 겁니다.

원래 셋이 돌아가며 운전대를 잡기로 했는데 내가 후리웨이 운전을 즐기지 않는 줄 잘 아는 남편과 아들이 배려를 해 줬습니다.  덕분에 거의 뒷자리에서 자다 깨다 앉았다 누웠다하며  비몽사몽....편하게 왔습니다.

대체로 햇볕이 쨍쨍하면서도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소나기가 쏟아지는 일이 종일 반복됩니다.

중간에 개스 채우는 걸 깜빡했습니다. 다음 개스스테이션이 얼마나 먼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방에 지평선만 보입니다. 내려서 밀 준비들해. 로변철씨가 겁을 줍니다. 드디어 게이지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언제 설지 모르는 상황. 조마조마해서 무조건 다음 엑싯에서 로칼로 나갔습니다. 다행히 몇블락 옆에 작은 개스스테이션 비슷한데가 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주유소 맞아? 판자집같은 건물이 다 쓰러져 갑니다. 주변 일대의 황량한   분위기는  타임머신타고 한 백년쯤 전 미국 촌구석에 온 거 같습니다. 가까이 가보아도 문을 연건지 아웃오브비지니스한지 몇십년 된 곳인지 분간이 안됩니다. 

문득 무서운 미국영화 스토리가 떠오릅니다. 먼길을 가다 길을 잃어 잠시 들린 어느 변두리 마을에서 연이어 생기는 요상스런 일들, 친절한듯 하지만 뭔가를 숨기는듯 시골동네 주민들의 이상한 눈빛과 태도....뭐 그런....
                                                       
개스주입후 돈 내러 안으로 들어갔던 남편 말로는 백인노파가 갓난 손녀딸 한팔에 앉고 젓병을 물려가며 골동품 같은 캐쉬레지스터로 돈을 받더랍니다. 한편 화장실에 갔던 아들은 변기통스위치에 "사용 후 누르고 한참을 있을 것" 이라는 쪽지를 붙여 놨더랍니다. 얼마나 웃긴지 혼자 킬킬대고 한참 웃었다고.    



점심은 중간에 오마하 못미쳐 링컨(네브라스카) 부근의 레스트에어리어에서 남은 음식으로 해결했습니다. 너른 잔디밭에 바베큐불판도 설치된 그늘 패티오에서 구비쳐 흐르는 시내물을 바라보며. (미국과 한국의 다른점 중 하나-고속도로 휴게소란게 미국엔 없다. 그대신  이런 잠시 쉬는 공간이 30-40마일 마다 한군데 정도)  

마침내 아이스체스트가 말끔하게 텅비었고 녹은 얼음물을 잔디밭에 뿌렸습니다. 알뜰하게 미리 준비한 음식을 남김없이 처리하고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드모인(아이오아) 부근에서 누군가 갑자기 중국음식이 땡긴다는 말을 했습니다. 즉석에서 구글링으로 평점이 좋은 중국부페를 찾아보니 바로 다음 출구exit 멀지 않은 곳에 뱀브라는 곳이 나왔습니다.


순발력있게 찾아간 것은 좋았지만 전혀 모르는 지역, 모르는 식당이라 과연 음식이 어떨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왠걸, 맛과 질은 물론 서비스, 인테리어까지 어느하나 부족함이 없는 보기드물게 완벽한 중식/스시부페였습니다. 

Bamboo Buffet & Grill그럼에도 불구하고 값 또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했습니다. 남편은 아주 만족해서, 주지 않아도 되는 팁을 왕창 놓았습니다. 그래선지 원래 그런지 매니저와 종업원들의 깍듯한 배웅 속에 귀빈같은 기분으로 식당을 나왔습니다. 운전으로 인한 하루의 피로와 허기가 싹 풀리는 만족스런 저녁이었습니다. 

그후 서너시간 집에 도착할때까지 운전대를 번갈아 잡아가며 부자간의 대화는 끝없는 고속도로를 따라 한없이 이어집니다.  뒷자리에서 비몽사몽간에 듣자하니 아들이 자랄때 추억으로 시작해 친구들 이야기, 앞으로 진로에 대해....아빠와 아들의 정담은 꼬리를 뭅니다.



그러다 아들이 요즘 부쩍 관심이 많은 철학분야- Existentialism에 대해  아빠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작된 남편의 견변철학 강의는 인생, 과학, 종교, 우주를 넘나듭니다. 나야 노상 듣는 소리라 귓전으로 흘리며 저 양반 운전이나 잘 하나 신경이 쓰입니다. 근데 왠일로 아들은 아빠말을 흥미진진하게 경청하(는척하?)며 맞장구를 잘도 쳐줍니다. 기특합니다. 

새벽 1시가 넘어 마침내 집 어귀에 도착.  헤트라이트 불빛에  무성하게 자란 앞뜰 잔디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로변철씨 왈, 잘 못하면 호랭이 나오겠다. 


짐을 내리며 대쉬보드를 보니 7일간 통산 약 2천 6백마일을 달렸습니다. 뉴욕-LA 거리가 약 3천 마일이니 거의 대륙횡단 거리를 달린 셈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