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3일 토요일

미국이 위험하다구?

한국에 갔을때 만난 분들 중에 미국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은 걸 보고 좀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국에는 어디나 무서운 범죄가 너무나 많다.  총을 가지고 등교하는 중고생들도 있다더라. 여성이 밤에 도심을 혼자 걷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다.  

네,  다 사실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단, 그것이 극히 일부 우범지역에 국한된 이야기라면 말입니다.
예를들어 일반적으로 악명높은 뉴욕의 할렘가 같은 곳- 과거보다는 많이 정화되었다지만 여전히 조심해야 할 지역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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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거스 출장길에 아들을 데리고 갔던 로변철씨 카메라에서 발견했던 사진 한장- 
애 데리고 도대체 어딜 갔었던 걸까? 


연전에 차로 캐나다 토론토 갈 일이 있었습니다. 도중에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 변두리를 통과했지요. 지난달 시가 파산신청을 했다는 뉴스로 모두에게 충격을 준 바로 그 자동차산업으로 유명한 도시지요. 당시 로변철씨가 차를 돌려 궂이 한번 보고 싶다고 우겨 한바퀴 드라이브를 한 곳이 있습니다. 디트로이트 북쪽의 후린트란 곳입니다. 호기심이 발동한건 FBI 통계기준으로 미국에서 가장 댄저러스 앤드 워스트한 네이버후드 1위로 당당히 뽑힌 곳이라서였지요. 과연 거리 분위기가 살벌했습니다. 신호대기에 잠시 서있는데도 불안하더군요. 신문지쪼가리로 앞 유리창을 닦는 시늉을 한 뒤 돈을 요구한다는 소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뒷편에서는 순식간에 타이어 윌캡을 떼어가기도 한다더군요.


 서부의 경우 LA 사우스 빈민가가 위험합니다. 도심 서쪽의 코리아타운 일대도 범죄율이 높지요. 특히 마약딜러 갱들이 설치는 저소득 흑인지역과 라티노들이 모여사는 일부지역들은 할렘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 많구요. 하지만 막상 거기 사시는 여러 한국분들에게 물어 보세요. "글쎄, 뉴스보면 그런데 우린 그냥 모르고 살어...."지난주 등반모임에서 만난 어느 원로 교민의 말씀.   

샌프란시스코- 관광하고 돌아다니며 두려운 마음이 생긴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베이 동쪽 건너편의 오클랜드 흑인빈민가로 들어서면 분위기 완전  딴판.  살인사건이 시도때도 없이 벌어진다고 하더군요.

그러고보면 참 미국이 위험한 곳으로 느껴집니다.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애 키우며 살지?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 모두가 어디까지나 일부 대도시 특정지역에 대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모든 지역이 이런 상태라고 생각한다면 넌센스지요.  전체 비율로 따지면 1%나 될까요?  대다수 일반시민들은 일부러 찾아가기 전에는 평생 갈 일 없는 그런 일부 지역의 이야기 일 뿐입니다. 한국에 계신 분들 처럼 미국에 사는 우리들도 영화나 뉴스에서나 보는 동네들이지요.


일반화의 오류 

센세이셔날리즘을 추구하는 영화나 뉴스에는 당연히 우범지대 모습이 더 자주 비추게 되겠지요.  또한 미국을 다녀온 사람들 입에서도 평범한 지역보다 이런 곳 이야기가 더 많이 회자될테구요. 그러다보니 일부 또는 한단면을 마치 전반적 미국의 모습인양 오해 또는 과장해 생각하게되는 일(mistake of hasty generalization)들이 많은 듯 합니다.

날씨도 좋고하여 요즘 야간산책을 자주 즐깁니다.  오늘도 도심 한복판을 가로 질러 선술집, 스포츠바와 노천카페들이 모여 있는 브로드웨이와 세컨스트릿 일대를 여러 블락 걸었습니다. 발길 가는데로...

이런 야심한 시간에 여자 혼자 걸어 다녀도 두렵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대도시 다운타운이라면 아무래도 생각하기 힘든 일이겠지요. 시내를 걷거나 자전거를 탈때마다 늘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듭니다.

하여간 그래서 오늘 이야기의 결론-미국은 정말 그렇게나 위험한가?

답은 Yes and No...즉 일부 우범지역이 아니라면 미국의 도시들은 대체로 안전하다-일듯 합니다. 



어제 야간산책길에 만난 굴러가는 술집을 셀카로 포착했습니다. 이런거 다른 도시에도 있는지, 전 난생 처음 봅니다만. 아이디어가 재미나네요. (Rochester, MN)







2013년 7월 27일 토요일

오늘도 걷는다

뭐니 뭐니해도 역시 걷기 만큼 좋은 운동이 없는 듯합니다.

장비필요없이 운동화만 있으면 되고,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고, 다른 운동처럼 부작용, 부상 염려 거의 없고..... 
특히 중년 이후엔 최고의 기초체력 유지법이라 생각됩니다. 

무릎 다치기 전에는 이렇게 뛰기도 했었는데....파인아일랜드로 이어지는 더글라스트레일. 

언제부턴가 우리 부부는 매일 한 두시간을 나란히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아이들 문제,  노후대책...

그런데 공기좋은 숲속 트레일을 걸으며 이야기를 하면 어쩐지 보통때보다 논리도 정연해지고 좋은 아이디어도 더 잘 떠오릅니다. 가끔 과거지사가 시시콜콜 생각나  정담이 말다툼으로 이어지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하지만. 

걷기가 치매에도 좋다는데 정말인듯 합니다. 그러고보면 옛날 그리스에는 늘 길을 걸으면서 철학을 논한다하여 페리파토스(산책길)학파라 불리던 일단의 학자들도 있었다지요?
  매주 금요일은 십년지기인  조디 밀러와 같이 걷는 날.  
 남편이 얼마전 모토사이클 사고로 다리를 다쳐 한동안 바깥 산책을 못했습니다.  좀 나아져서 오늘 오랜 만에 같이 산책을 했습니다.  목발 짚은 남편 때문에 천천히 그러나 오래도록 원없이 걸었지요. 역시 기분이 너무 좋네요. 
스노우스톰이 몰아친 영하 25도의 다운타운 걷기. (2012)

앞으로 여행길, 남편은 모토홈에 모토사이클과 자전거를 싣고 다니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행하는 틈틈이 가능한 많이 많이 걸을 생각입니다.  바퀴도 좋지만 역시 내 두다리가 최고라는 생각입니다. 연전에 넘어져 무릎에 크랙이 생기는 사고이후 무릎이 좀 시원치 않아 걱정이긴 합니다만. 


우리의 버킷리스트에는 아메리카과 유럽 대륙도보횡단이 들어 있습니다.
내생애 최고의 산책길!  역시 작년 지중해 크루즈선 탔을 때 매일 아침 걷던,
배 갑판을 한바퀴 도는 선상트랙. 



2013년 7월 14일 일요일

숲속의 게릴라로 변신한 우리딸


연일 푹푹찌는 무더위. 전기도 물도 없다.  달겨드는 모기떼와 전쟁하며 하루 8시간의 육체노동. 저녁은  직접 모닥불을 피워 여럿이 팬하나에 해먹는다. 끈적대는 몸으로 잠자리에 든다.  열흘넘게 샤워 한번 못했다. 심지어 TP(화장지)사용도 금지돼 뒷처리는 나뭇잎으로 한다. 


무슨 특수부대 지옥훈련소이야기가 아닙니다.  인질수용소 이야기도 아닙니다. 바람 불면 날아갈까 비오면 꺼질까 애지중지 키워온 우리 대학생 딸네미의 여름 캠프이야기입니다.

자연보존봉사단의  캠프리더로 떠난 후 걸려온 딸의 전화를 받고 우리 부부는 실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처음엔 얘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지요.


설마....거기가 미국 맞아? 혹시 남미나 아프리카 어느나라로 간거 아냐?



그런데 직접 방문해 보니.....사실이었습니다. 어제, 거진 한달여 만에 트윈시티에서 딸을 만났습니다. 같이 점심을 먹고 북상, 2시간 정도 달려 힝클리란 곳으로 빠졌습니다.  무슨 카지노를 지나 한참을 가니 캠프가 있다는 스테이트파크의 사인이 보였습니다.




이제부턴 흰꼬리사슴과 새끼곰이 노니는 숲 길입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 그래블로드를 얼마나 달렸을까, 여기저기 수풀사이로 캐빈들이 나타났습니다. 문득 헨리데이빗소로우의 오두막이 연상되더군요.


중앙의 통나무집 앞에 Conservation Corps란  그래픽이 붙은 밴과 트럭들이 서 있었습니다. 여기가 베이스캠프랍니다.


이때 한 무리의 건장한 청년들이 콩가루같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어정쩡하게 서 있는 우리차를 향해 다가 왔습니다.  순간, 여기가 만약 남아메리카의 어느 정글이고 이 친구들이 만약 총을 메고 있었다면....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이들이 활짝웃는 얼굴로 악수를 청하지만 않았더라면이건 영락없이 몸값을 노리고 길 잃은 관광객을 납치하려는 남아메리카 어느나라 반정부 게릴라에 둘러 싸이는 형국입니다.












다들 햇볕에 얼굴이 벌겋게 익은 채  땀냄새가 풀풀나는 이들은 미전역의 많은 지원자 중 엄선된 학생들입니다.

여름 8주간 주어진 이들의 임무는 청소년 캠프리더(Youth Corps crew leader).  2인1조가 되어 한 그룹당  6명의 청소년들(crews, 15세~18세)을 이끌고 다양한 자연보존 활동을 한다는 겁니다. 한동안 카누를 타고 강을 따라 다니며 야영을 하기도 했다네요.

딸애가 보여준 작업 업리스트를 보니 이건 뭐 완전 노가다....심지어  벌목공이나 할 거 같은 일들도 보입니다.

각종 데이타/ 관찰, 조사활동
Water quality sampling & monitoring, Wildlife surveys.
경사지, 하천, 둔덕 등 개간정비
Slope stabilization,  Shoreline & stream bank restoration.
식목, 수목관리, 씨앗수집, 천수(?)가든 조성 등등
Planting, Nursery activities, Seed collection, Rain garden installation.
도크,교량, 계단...건축/목공관련작업, 길 만들기, 관리
Docks and bridges, Boardwalks and steps, Natural resource facilities,Trail construction and maintenance.

학기내내 공부만 하던 대학생들이 무슨 유격대 대장처럼 청소년 그룹을 이끌고 숲속을 다니며 이런 일을 한다는게 아직도 실감이 안갑니다.

한편 비영리단체지만 워낙 힘든 육체활동이 포함된지라 참여자들에게는 보수가 지급됩니다.  기간 중 일당과 모든 숙식경비제공 외에 8주간의 봉사활동 댓가로 지급되는 장학금은 한국 돈으로 약 400만원 정도.  딸은 오는 9월 부터 한 세메스터를 정부장학금을 받아 아프리카 세네갈대학에서 공부할 예정입니다. 이번 여름 번 엑스트라 인컴은 오가는 길에 친구와 함께 모로코와 프랑스에 스톱오버해 여행경비로 쓸 생각이랍니다.

생각하면,
산모나 아기에 대한 웰페어시스템이 좋은 유럽에서 태어난 딸 애. 그 바람에 미국에서 생산한 아들과 달리 날때부터 돈벌며 나온 아이. 학비가 엄청난 사립대학을 다니지만 커서도 이렇게 다양한 장학금과 돈벌이로 부모 짐을 덜어주니 얼마나 대견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딸과 친구 레이첼이 거하는 캐빈 안팎을 둘러 보는 중.  이 무더위에 이런데서 샤워도 못하고 어떻게 잔다는 건지 너무 불쌍해서 처음엔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냉방기는 커녕 선풍기도 없는 한증막에 모기는 웽웽거리고...문만 열고 나오면 버그스프레이를 잔뜩 뿌렸는데도 모기떼가 단체회식 좀 하자며 달려 들더군요.

침대 위에 딸아이의 백팩- 기능성 좋은 신형을 사주었건만 마다하고 궂이 엄마,아빠가 처음 유럽백팩여행시 남대문시장에서 샀던 사반세기전의 저 구닥다리 배낭을 가져간 딸.



장하고 용맹한 딸에게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먹고 돌아 오는 길.
역시 감명을 받은 듯 한동안 말없이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이 더위에 저런 환경에서 아직도 한달을 더 지내야 
하는데 이해가 안가요. 저렇게 신이 나 있다는게.  

- 글쎄말야. 무슨 극기훈련들 하는거 같더라구.   

- 혹시 사실은 많이 힘든데 걱정할까봐 우리 앞에서만 
명랑한척 한 건 아닐까요?  

-  그건 아닌거 같애. 다들 정말로 밝고 행복해 보이자나.  
젊을땐 저런 고생도 재미있는 법이지.     

 -역시 청춘이 좋네요.  












2013년 7월 6일 토요일

뉴욕변호사되어 돌아온 그때 그 소녀

우리가 정든 남가주를 떠나 이곳 미드웨스트지방에 정착해 사는 동안 늘 가깝게 지낸,  존경하는 분 중에 미국에 사십여년을 거주하신 P선생님 부부가 계십니다.  지난주 이분들 따님의 결혼피로연이 열렸습니다.

백인인 신랑과 P선생님의 큰딸인 신부는 둘다 맨하튼의 뱅크럽시(파산법)변호사입니다.  달포전에 이미 친가가 있는 그곳 뉴욕에서 공식 결혼식을 했고  친정이 있는 우리동네에서 주변 지인들에게 인사차 골프장 크럽하우스를 빌려 다시 결혼인사 겸 디너모임을 가진 겁니다.

양가부모와 가운데 신랑신부. 
혹시나 염려되는 프라이버시 문제상 잘 안나온 원경사진만 한장 올립니다.

그러니까 1997년 어느 여름, 대륙횡단 여행 중 이곳을 지나다가 우연한 인연으로 첫밤을 P선생님댁에 묵었습니다. 당시 하이스쿨 주니어였던 따님은 우리에게 제 방을 내주고 아랫층에서 잤던, 그래서 미안하던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그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 어린소녀가 대학을 마치더군요. 이어 원어민교사로 서울, 북경 다시 미국 여러도시를 전전하며 세상경험을 쌓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게 불과 얼마전 같습니다.  그 무렵 P선생님 내외분이 걱정을 많이 하시던 일도 기억이 새롭네요.

그리고 얼마후 다시 시애틀에서 LSAT 공부를 한다는 소문이 들리는가 싶더니 이어 보란듯이 동부의 명문법대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모두가 안도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새 뉴욕에서 변호사가 되었답니다. 잠시 취직걱정을 하는가 하더니 맨하튼의 유수한 로펌에 들어 갔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제 우리딸 언제나 시집가 손주보나 부모님 애를 좀 태우나 싶더니 영화배우 뺨치는 잘생긴 애인이 생겼다는 풍문....그리고 마침내 오늘 백마탄 왕자님과 함께 혼례를 올리러 금의환향한겁니다.

이젠 서른두살의 원숙한 여인이되었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는 아직도 처음 보았을때의 그 어린 주니어 여고생으로 자리하고 있는 신부입니다. 정말 아이들 자라는데서 세월의 빠름을 느낀다는 옛어른들 말씀을 다시 실감하는 오늘입니다.

사실은 그간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미국의 결혼문화에 대한 비교를 해보려고 시작한 글입니다. 그런데 신부이야기로 서두가 너무 길어져 오늘은 일단 여기서 줄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은 결혼식의 준비절차와 과정,세레모니가 부모등 가족 그리고 하객위주인 경향이 있습니다. 또 규모가 큽니다. 그에 비해 미국은 준비도 진행도 그날의 주인공도 철저하게 당사자 위주로 즉 브라이드와 브라이달그룸에 집중 포커스가 맞춰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객도 보통 신랑신부의 잘아는 측근, 친구들만 초대되므로 규모가 작더군요. 그외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기회에....


2013년 7월 4일 목요일

노가다로 보낸 독립기념일



독립기념일은 아마도 미국인들이 가족 캠핑이나 여행을 가장 많이 가는 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린 나들이는 커녕 종일 먼지 마시며 노가다를 했습니다. 

이사를 앞두고 지하에 있는 옷, 신발, 가구 기타 잡동사니들을  다 꺼내 정리하느라고.   
무조건 다 뒷마당 패티오에 꺼내 놓고 그 중 버릴 것과 팔 것을 구분하고 의류와 신발, 양탄자 등은 일광욕을 시켜주고 ....

힘은 들었지만 초봄부터 벼르고 벼르던 일을 하고나니 속이 다 후련합니다. 허리와 팔꿈치를 다쳐 도움이 안되고 잔소리만 하는 남편 대신 그나마 아들이 도아줘서 겨우 끝낼 수 있었네요. 

저녁은 세식구가 뒷뜰에서 모닥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으며 시원한 맥주한잔. 

그리고 소화도 시킬 겸 그냥 다운타운으로 야간산책을 나갔습니다. 사람이 붐벼서 불꽃놀이 구경은 싫다고 해서. 

그런데 다들 화이어웍을 보러들 갔는지 안그래도 평소 인적드문 시간의 한산한 시내는 그야말로 텅텅 비었더군요. 정말 어느 블락은 개미새끼 한마리 안보입니다.  사방에 불은 밝아도 어쩐지 유령의 도시 같습니다. 약간 무서운 생각이 들어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고 급귀가. 





2013년 6월 25일 화요일

정원단장

전에 살던 호변목가에 비하면 정원관리가 별로 할게 없는 우리의 백년고옥.



포치 계단 양 옆의 어언(urn)들에는 1`2불짜리 이것 저것 작은 화초를 사다 조합해서 이렇게...

와, 전문가보다 낫다! 로변철씨 칭찬에 기분 우쭐.....


남편이 외부냉방기 옆 죽은 나무를 뽑고 새로 아버비테 묘목을 심는 중.
조만간 이사갈 집이지만 다음주인을 위해....


2013년 6월 15일 토요일

젊은오빠의 위험한 음모

로변철씨가 또 위험한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우리의 남은 여정이 자칫 늙은 은퇴자의 하품나는 관광여행으로 전락하는 것을 염려해서...라네요.




안전과 편함은 재미와 스릴의 적- 모든 형태의 익사이트먼트는 난이도가 높을 수록 그리고 리스크 팩터가 많을수록 증가하는 법....이라는 지론입니다.  얼마전 산중에서 일명' Tiger truker' 팀을 만난 후 남편은 지난 봄부터 내심 품었던 그 은밀한 계획들을 더욱 구체화 하는 듯 합니다.

"익스페디션 RV.(Expedition vehicles)여행....어드벤쳐라이딩 세계일주... "


청춘도 아니고 곧 손자볼 나이의 젊은 오빠 입에서 요즘 좀 가당치 않은 발랄한 단어들이 자주 튀어 나옵니다. 글쎄요. 저야 뭐 궂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자세로 -늘 그래왔듯이- 엄마가 철없는 아들이야기 듣듯 들어만 주고는 있습니다만.

남편 말대로  콘트롤 가능한 리스크를 적당한 양념으로 섞는 정도라면 삶의 활력이 되겠지요. 다만 모든게 정도 문제란 생각입니다. 참, 근데, 대체 통제 가능한 리스크란게 말이 되나요? 콘트롤 가능하다면 그건 더 이상 리스크가 아닌데....일종의 옥시모란oxymoran?





알라스카로 가는 길-탐사용으로 개조한 사륜트럭(일명 '타이거') 을 탄 모험여행을 즐기는 은퇴 부부를 만났어요. 우리에게 캠퍼 내부와 각종 서바이벌 장비를 구경시켜주었습니다.

남편의 조심성과 신중함을 믿기에 어떤 결정을 하건 크게 걱정은 안하고 있습니다만....
자타가 공인하는 짠순이로서 늘 남편에게 주문하는게 한가지 있긴 있습니다.

" 다 좋은데 가능한 돈 많이 안드는 방향으로!"

2013년 6월 14일 금요일

서울-부산 4배 거리를 하루에 운전한 날

오늘 하루 집까지 거의 1천 마일(1천6백키로)을 단숨에 달려야 합니다.

 원래는 귀가길을 원래 2-3일 잡고 중간에 관광/ 야영도 하면서 아들과도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던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친구들과 파티, 캠핑여행 등이 연달아 있다는 이유로 논스탑으로 집에 가잔 겁니다. 하긴 우리 생각이지 저 나이에 친구들과 저러구(아래 사진)어울리는게 재미있지 누가 부모와 캠핑을 따라 다니고 싶겠습니까.


                       아들의 훼이스북에서 업어온 사진. 

내심 섭섭하지만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닙니다. 특히 지난 1년을 교환학생으로 노르웨이와 프랑스에서 온 여학생 둘과 친하게 지낸 아들- 마침 그 애들이 떠나는 훼어웰파티 등이 다음날부터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아들은 그 중 한아이와 좀  특별한 감정을 발전시켜가고 있는 상태이기에 떠나기 전에 좀 더 많은 시간을 그 애와 보내고 싶은 겁니다.

원래 셋이 돌아가며 운전대를 잡기로 했는데 내가 후리웨이 운전을 즐기지 않는 줄 잘 아는 남편과 아들이 배려를 해 줬습니다.  덕분에 거의 뒷자리에서 자다 깨다 앉았다 누웠다하며  비몽사몽....편하게 왔습니다.

대체로 햇볕이 쨍쨍하면서도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소나기가 쏟아지는 일이 종일 반복됩니다.

중간에 개스 채우는 걸 깜빡했습니다. 다음 개스스테이션이 얼마나 먼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방에 지평선만 보입니다. 내려서 밀 준비들해. 로변철씨가 겁을 줍니다. 드디어 게이지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언제 설지 모르는 상황. 조마조마해서 무조건 다음 엑싯에서 로칼로 나갔습니다. 다행히 몇블락 옆에 작은 개스스테이션 비슷한데가 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주유소 맞아? 판자집같은 건물이 다 쓰러져 갑니다. 주변 일대의 황량한   분위기는  타임머신타고 한 백년쯤 전 미국 촌구석에 온 거 같습니다. 가까이 가보아도 문을 연건지 아웃오브비지니스한지 몇십년 된 곳인지 분간이 안됩니다. 

문득 무서운 미국영화 스토리가 떠오릅니다. 먼길을 가다 길을 잃어 잠시 들린 어느 변두리 마을에서 연이어 생기는 요상스런 일들, 친절한듯 하지만 뭔가를 숨기는듯 시골동네 주민들의 이상한 눈빛과 태도....뭐 그런....
                                                       
개스주입후 돈 내러 안으로 들어갔던 남편 말로는 백인노파가 갓난 손녀딸 한팔에 앉고 젓병을 물려가며 골동품 같은 캐쉬레지스터로 돈을 받더랍니다. 한편 화장실에 갔던 아들은 변기통스위치에 "사용 후 누르고 한참을 있을 것" 이라는 쪽지를 붙여 놨더랍니다. 얼마나 웃긴지 혼자 킬킬대고 한참 웃었다고.    



점심은 중간에 오마하 못미쳐 링컨(네브라스카) 부근의 레스트에어리어에서 남은 음식으로 해결했습니다. 너른 잔디밭에 바베큐불판도 설치된 그늘 패티오에서 구비쳐 흐르는 시내물을 바라보며. (미국과 한국의 다른점 중 하나-고속도로 휴게소란게 미국엔 없다. 그대신  이런 잠시 쉬는 공간이 30-40마일 마다 한군데 정도)  

마침내 아이스체스트가 말끔하게 텅비었고 녹은 얼음물을 잔디밭에 뿌렸습니다. 알뜰하게 미리 준비한 음식을 남김없이 처리하고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드모인(아이오아) 부근에서 누군가 갑자기 중국음식이 땡긴다는 말을 했습니다. 즉석에서 구글링으로 평점이 좋은 중국부페를 찾아보니 바로 다음 출구exit 멀지 않은 곳에 뱀브라는 곳이 나왔습니다.


순발력있게 찾아간 것은 좋았지만 전혀 모르는 지역, 모르는 식당이라 과연 음식이 어떨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왠걸, 맛과 질은 물론 서비스, 인테리어까지 어느하나 부족함이 없는 보기드물게 완벽한 중식/스시부페였습니다. 

Bamboo Buffet & Grill그럼에도 불구하고 값 또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했습니다. 남편은 아주 만족해서, 주지 않아도 되는 팁을 왕창 놓았습니다. 그래선지 원래 그런지 매니저와 종업원들의 깍듯한 배웅 속에 귀빈같은 기분으로 식당을 나왔습니다. 운전으로 인한 하루의 피로와 허기가 싹 풀리는 만족스런 저녁이었습니다. 

그후 서너시간 집에 도착할때까지 운전대를 번갈아 잡아가며 부자간의 대화는 끝없는 고속도로를 따라 한없이 이어집니다.  뒷자리에서 비몽사몽간에 듣자하니 아들이 자랄때 추억으로 시작해 친구들 이야기, 앞으로 진로에 대해....아빠와 아들의 정담은 꼬리를 뭅니다.



그러다 아들이 요즘 부쩍 관심이 많은 철학분야- Existentialism에 대해  아빠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작된 남편의 견변철학 강의는 인생, 과학, 종교, 우주를 넘나듭니다. 나야 노상 듣는 소리라 귓전으로 흘리며 저 양반 운전이나 잘 하나 신경이 쓰입니다. 근데 왠일로 아들은 아빠말을 흥미진진하게 경청하(는척하?)며 맞장구를 잘도 쳐줍니다. 기특합니다. 

새벽 1시가 넘어 마침내 집 어귀에 도착.  헤트라이트 불빛에  무성하게 자란 앞뜰 잔디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로변철씨 왈, 잘 못하면 호랭이 나오겠다. 


짐을 내리며 대쉬보드를 보니 7일간 통산 약 2천 6백마일을 달렸습니다. 뉴욕-LA 거리가 약 3천 마일이니 거의 대륙횡단 거리를 달린 셈입니다.

2013년 6월 13일 목요일

콜로라도에서의 마지막 날


이틀밤을 잔 모레인파크 야영장에서 일찌감치 철수 준비 중.



산을 내려와 록키국립공원의 초입이랄 수 있는 에스테스파크 도서관 Estes park libruary을 찾았습니다.



무료파킹공간도 널찍하고 실내 열람공간도 공부할 맛나는 쾌적한 분위기-여타 대도시 부촌의 도서관에 비해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인구가 불과 오륙천에 불과할 벽촌에 이런 규모의 도서관이라니 아직은 미국의 저력이 살아 있다는 생각이 다시 듭니다.  


여기서 카메라/랩탑을 충전하고 주식, 은행 어카운트도 정리하고 오늘밤 묵을 콜로라도스프링스에 호텔예약도 할 수 있었습니다.



나오는 길에 혹시나해서 남편이 옆자리의 노인에게  덴버가는 숏캇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노인은 지도를 상세히 집어가며 우리에게 뜻밖에 지름길을 알려 주십니다.  하마터면 어제 만난 교수님(이번 산행에서 만난 유일한 한국분)말대로 다시 볼더로 가는 험한 산길을 탈뻔했습니다. 

아무리 절경이라도 재방송은 별로지요.  토박이 노인에게 묻기를 너무 잘했습니다.  
변철오빠가 한마디했습니다. 

이래서 돌다리도 두들겨 봐야 한다니까....


중간에 하이웨이노상에서 맛있는 즉석런치도 즐기며 덴버까지 드라이브는 룰루랄라였습니다. 그런데 인근 산불로 25번 남행길은 정체가 심했습니다. 서둘러 일찍 출발하길 잘한 겁니다.  

USAFA에 4시 30분까지  간신히 도착 늦지않게 학부모 저녁디너에 참석 할 수 있었습니다. 

불과 나흘만에 재회인데 마치 몇년 만의 만남인양 아들과 호들갑스런 한바탕 포옹....그리고 다른 가족들과 즐거운 디너. 우리 옆자리엔 솔트레익, 유타에서 온 몰몬교도 가족이,  그리고 맞은 편엔 휴스톤, 텍사스에서 온 패셔너블하게 차려입은 멋쟁이 엄마가 자리했고 몇테이블 건너 마이애미, 플로리다에서 온 한국인 가족과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무려 4천명이 20분만에 식사를 마치고 나갈 수 있다는 부페식당의 엄청난 규모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지질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의 신선도와 맛도 수준급이었습니다.


 호텔이 아카데미 바로 건너편,  산불 난 곳과 멀지 않아 걱정했는데 다행히 바람이 도와줘서 하루 지내는데 아무런 영향은  없었습니다. 텔레비젼-CNN에서는 계속 산불진화 현황을 생중계하고 있었고  창밖으로 진화물질을 운반하는 공군헬기들이 날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2013년 6월 12일 수요일

앗! 나때문에 사고낸 버스기사

산길을 걷는 중에 버스가 오길래 버스스탑이 아닌 곳이지만 혹시나 해서 손을 들었습니다. 국립공원내 캠프장 간을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우릴 태워 주려고 무리하게 숲길 가에 차를 세우다가 그만 버스지붕의 한쪽 코너가 길가 거목의 나뭇가지에 심하게 주욱 긁혔버려습니다.  
어찌나 미안한지...
운전기사와 함께 긁힌 부분을 살피며 보니 낡은 스쿨버스를 개조한 차들이 대부분인데 하필 이차는 최신형 버스입니다. 비싸보입니다. 

                       우리 때문에 사고를 낸 버스 운전기사.
그런데 어딘가에 워키토키로(전화가 안돼는 곳이라) 사고리포트를 하고 난 그녀는 우리에겐 전혀 속상한 내색을 안합니다.  오히려 우리를 미안하게 만들어 미안하다는 듯 오늘 하이킹이 어땠냐는 등 명랑하게 수다를 떱니다.
일단 벌어진 일로 이 좋은 날 기분까지 망칠건 없지 않냐는 도인의 자세입니다. 
남편이 한마디합니다.  웅장한 자연 속에 살다보니 사람들의 마음도 산처럼 넉넉해 지는 가보다...라고.